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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사회일수록 몸을 감추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던가. 그는 일찍이 눈에 띄는 와이셔츠를 접어두고 채도가 낮은 옷을 골라입었다. 사이즈가 애매하게 맞아떨어지는 후드티,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짝짝이 신발, 무릎팍이 너덜거리는 바지, 허리에 묶인 청자켓……. 단언컨대 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둥근 테의 안경과 남색 백팩 뿐일 거다.

최근, 직접 머리를 자른 것인지 새까만 머리카락은 부자연스럽게 층이 나뉘어져 있다. 그에 비하면 앞머리는 칼같이 반듯하다. 손과 팔에는 오래된 흉터가 자질구레하게 남아있다. 쳐진 눈썹, 쳐진 눈매인데도 영 순한 인상은 아니다. 폭풍전야와도 같은 고요함이 그 눈동자 속에서 몰아치고 있다.

낯선 것을 향한 노골적인 경계를 숨기지 않는다. 늘 남색 백팩을 끌어안고 있다.

이름

우재희/Woo Jaehui

나이

33세

신장

171cm

직업

수의사

성격

기질적인 예민성/경계심과 의무/악착같은 생존욕

“사서 고생하는 성질머리를 버려라.” 그가 살면서 들은 말 중 횟수로 따진다면 으뜸일 것이다. 그는 타고나기를 예민했다. 사소한 실수나 틀어짐, ‘고작’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자잘한 일에도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했다. 좋게 말한다면 허투로 넘어가는 법이 없는 꼼꼼함이 있는 것이고, 직설적으로 따진다면 강박이었다.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데도 스스로는 느슨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강박. 하지만, 사회가 무너지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판국에 예민이라는 것은 기질적으로 그렇게까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타고난 생존자의 귀감이다.

 

생존자 커뮤니티의 붕괴, 무뢰배의 습격, 각자도생……그러한 상황들이 그의 경계심을 더욱더 키워나갔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덜 찝찝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빚진다’라는 감각을 끔찍하게도 싫어하게 됐다. 다만, 의료인의 의무(물론, 그의 환자는 사람이 아니었다.)라는 건 종종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게 만들곤 한다. 그래, 그렇다면 차라리 빚을 지게 만들자. 보급품을 나눠주진 않아도 금방이라도 오염될 것 같은 저 상처를 치료해주기만 하는 거다. 몇 번이고 경계심과 의무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빚는다.

 

악착같이 버텨라. 극한 상황에서도 블랙아웃을 겪지 않고 똑바로 설 수 있는 건 다 죽기 살기로 버티는 정신력의 산물이었다. 몇 번이고 무너진 정신은 그만큼 성장을 했고, 심지는 단단하게도 굳어갔다. 포기하지 않는다. 먹을 게 없다면 나무껍질이라도 먹을 것이다. 지금의 그는, 딱 그런 모토다.

기타

1. “개업할 것도 아니잖아. 너도 한국 정리하고 오라니까.”

두 살 터울의 누나(우솔희)가 하나 있다. 한국 땅을 벗어나지 못한 자신과는 다르게 단 번에 기회를 낚아챈 누나는 18년도부터 아르체토 시 인근 병원에서 소아과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매번 하는 말이 이쪽으로 와서 일하라는 얘기였다. 지겨울 정도로…….

부모님과의 사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흔하디 흔한 무뚝뚝한 장남의 역할. 꼬박꼬박 용돈과 생신을 챙기고, 가끔 본가로 내려가서 반찬을 받고, 영양가 없는 잔소리를 들으면서 네, 네,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였다. 가족 여행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가 마지막이다.

딱 중간에 걸친 가정이다. 버는 것도, 행복한 것도, 큰 굴곡이 없는 그런 집. 그래서 유산은 기대도 말라는 부모님의 말에 웃어넘길 수 있다.

 

2. “우 팀장님이요? 어우, 말도 마요. 엄청 예민하시죠……. 그래도 이러나 저러나 잘 챙겨주셨어요.”

(전) 24시 해담 동물병원 응급팀장.

이렇다 할 텃세에도 시달린 적 없는 오픈 멤버. 몇 년 동안 주간 근무를 줄곧 하다 21년 9월 즈음 야간으로 근무 시간대를 조정했다. 그 뒤로 붙은 별명은 “노오프NO OFF”. 스케쥴에 구멍나면 채워주는 사생활 없는 수의사……그 정도로 쉬지 않고 달렸다.

동료들과의 관계는 예민한 기질과는 다르게 썩 나쁘지 않다. 오히려 보호자들과 다툼이 잦았다. 그래도 아직까지 고소는 안 당했으니 다행이지 않냐며 모두가 농담처럼 웃고 넘긴다. 설렁설렁 일하기에는 동물을 아주 좋아한다. 정말로.

22년 1월, 일을 그만뒀다.

 

3. “전생에 산짐승이었나. 무슨 산을 이렇게 좋아해!”

취미는 등산과 캠핑, 그렇다보니 산 타는 게 특기다. 국내에 있는 산은 거의 다 정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년 전부터는 캠핑까지 하면서 쉬는 날마다 산에 콕 박혀사는 세미 자연인의 삶을 즐겼다. 인증 사진 찍는 데에는 큰 흥미가 없다.

가장 좋아하는 산은 오대산.

2022년~현재까지의 이야기

1. 22년, 세계 여행 그리고 불행한 입국

병원을 그만두고 세계 여행을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누나에게 초대를 받고 가페브로 입국한다. 바야흐로 5월 5일의 일이었다. 삼일 뒤, 전염병이 발병했다. 지지리도 운이 없었다.

자칭 하우스키퍼로 누나 집에서 신세를 지기 시작했다. 그야 관광객 신분으로 가페브에서 일을 구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시국일수록 누나를 돕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요리 실력이 늘어난 건 아마 이때쯤의 일이다.

슈퍼노바 바이러스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아파트 내부에서는 “생존자 커뮤니티”가 만들어졌다. 우남매는 커뮤니티에서 의료 지원을 담당했고, 의약품을 모아서 관리하는 둥 본격적인 토대가 잡혔다. 물론, 그의 입장에서는 불편하긴 매한가지였지만, 그나마 누나 아래에서 CPR이나 각 상황에 따른 응급처치술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2. 23년, 멸절 정책

멸절 정책이 발표되고 공든 탑이 순식간에 무너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동체보다 자신을 챙기기 급급해진 커뮤니티는 부족해진 자원에 불신이 커지면서 각자도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끝까지 어린 환자를 책임지려고 했던 누나는 병원으로 간 뒤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2주는 기다렸다. 원래 2주에 한 번 꼴로 오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이후로도 돌아오지 않으니 수소문을 했고, 어떤 소식도 들을 수가 없었다. 온갖 잡념이 정신을 좀먹었다. 죽었으면 어떡하지? 감염됐으면? 하지만 돌아오지 않았다는 건……. 아니, 여기로 오지 않을 수도 있지. 몇 주는 폐인처럼 지냈다. 하루치 식량으로 삼사일을 버티고, 울다 지쳐 잠들고, 숨만 쉬며 하루를 보내고——.

그러다 집 문을 따고 들어온 무뢰배 일당에게 보급품을 모조리 빼앗겼다. 그저 제정신을 차렸을 때는 더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남색 백팩만큼은 넘기지 않으려 얻어맞으면서 버티고, 버티고, 또 버텼다. 그 탓에 며칠은 앓아눕는 개고생을 걸쳤고. 그 뒤로 평생치의 노력을 다해 살아남기 위해 움직였다.

밤이면 나가서 이잡듯이 주변을 뒤적거렸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고, 시체 속에서 통조림을 발견해 고이 모셔두고, 다친 사람에게 치료해주는 조건으로 보급품을 일부 받기도 하며……끔찍하고도 불안정한 삶은 유지되었다.

 

3. 그리고, 현재.

라디오를 듣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여행 가방으로 들고 왔던 남색 백팩은 이제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게 되었다. 품에 끌어안고,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를 이를 악문다. 살아서 돌아가고 말겠다. 누나도 꼭, 찾아내서.

소지품

손전등

기호품

아몬드

능력치

근력 5 ∙ 민첩 4 ∙ 행운 1

특성

세기말의 의료법 위반 - 약품 소모 없이 10만큼의 체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오너 트리거 소재

동물학대 및 노골적인 동물 상해 묘사

텍관

제이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재희는 위협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제이를 고용한 것도 이 까닭이었다. 바깥을 돌아다녀본 적은 있지만,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한 이 험난한 도로 위에서는 마땅한 '보호'가 필요했다. 선금은 몇 푼도 안 되는 돈, 그러나 의뢰 지점까지 도착한다면 다른 보급품을 얹어 주겠다며 조건을 내세웠고, 수락됐다.

하지만 뜻밖의 재회가 '제이'를 등처먹는 기회가 됐다. 아파트에서 만났던 그 무뢰배 일당들을 조우한 것이다. "뭐냐, 일행이 있었으면 진작 말을 하지." 일행? 천만에 말씀. 남색 백팩을 끌어안고 바로 도망친 것은 그 말이 끝난 직후였다. 뒤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지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호위가 의뢰였으니.
이런 일을 해결하는 건 당신 몫이다!

이런 뻔뻔한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임태찬

지인들에게는 무슨 산을 그렇게 좋아하냐고 타박 받았지만, 비슷한 사람들은 으레 존재하는 법이다. 우재희가 등산 동호회에 가입하겠다 선택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때로는 호불호가 잘 통하는 사람이 필요한 법이니.

임태찬은 그 고집으로 가입한 등산 동호회에서 만났다. 워낙 사람이 좋았던 지라 동호회 사람과의 교류보다 '등산'에만 초점을 맞췄던 그도 조금씩 편하게 대할 수 있게 됐다. 누나와 함께 저녁 초대를 받기도 하고, 캠핑도 같이 즐기는 등 취미 생활이 잘 맞는 ‘친구‘ (같은?) 사이. 그의 딸인 임윤지와도 안면이 있을 뿐더러 공부를 도와주기도 했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다. 그것도 같이 있어야 할 사람을 잃어버린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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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사회일수록 몸을 감추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던가. 그는 일찍이 눈에 띄는 와이셔츠를 접어두고 채도가 낮은 옷을 골라입었다. 사이즈가 애매하게 맞아떨어지는 후드티,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짝짝이 신발, 무릎팍이 너덜거리는 바지, 허리에 묶인 청자켓……. 단언컨대 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둥근 테의 안경과 남색 백팩 뿐일 거다.

최근, 직접 머리를 자른 것인지 새까만 머리카락은 부자연스럽게 층이 나뉘어져 있다. 그에 비하면 앞머리는 칼같이 반듯하다. 손과 팔에는 오래된 흉터가 자질구레하게 남아있다. 쳐진 눈썹, 쳐진 눈매인데도 영 순한 인상은 아니다. 폭풍전야와도 같은 고요함이 그 눈동자 속에서 몰아치고 있다.

낯선 것을 향한 노골적인 경계를 숨기지 않는다. 늘 남색 백팩을 끌어안고 있다.

이름

우재희/Woo Jaehui

나이

33세

신장

171cm

직업

수의사

성격

기질적인 예민성/경계심과 의무/악착같은 생존욕

“사서 고생하는 성질머리를 버려라.” 그가 살면서 들은 말 중 횟수로 따진다면 으뜸일 것이다. 그는 타고나기를 예민했다. 사소한 실수나 틀어짐, ‘고작’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자잘한 일에도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했다. 좋게 말한다면 허투로 넘어가는 법이 없는 꼼꼼함이 있는 것이고, 직설적으로 따진다면 강박이었다.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데도 스스로는 느슨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강박. 하지만, 사회가 무너지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판국에 예민이라는 것은 기질적으로 그렇게까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타고난 생존자의 귀감이다.

 

생존자 커뮤니티의 붕괴, 무뢰배의 습격, 각자도생……그러한 상황들이 그의 경계심을 더욱더 키워나갔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덜 찝찝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빚진다’라는 감각을 끔찍하게도 싫어하게 됐다. 다만, 의료인의 의무(물론, 그의 환자는 사람이 아니었다.)라는 건 종종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게 만들곤 한다. 그래, 그렇다면 차라리 빚을 지게 만들자. 보급품을 나눠주진 않아도 금방이라도 오염될 것 같은 저 상처를 치료해주기만 하는 거다. 몇 번이고 경계심과 의무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빚는다.

 

악착같이 버텨라. 극한 상황에서도 블랙아웃을 겪지 않고 똑바로 설 수 있는 건 다 죽기 살기로 버티는 정신력의 산물이었다. 몇 번이고 무너진 정신은 그만큼 성장을 했고, 심지는 단단하게도 굳어갔다. 포기하지 않는다. 먹을 게 없다면 나무껍질이라도 먹을 것이다. 지금의 그는, 딱 그런 모토다.

기타

1. “개업할 것도 아니잖아. 너도 한국 정리하고 오라니까.”

두 살 터울의 누나(우솔희)가 하나 있다. 한국 땅을 벗어나지 못한 자신과는 다르게 단 번에 기회를 낚아챈 누나는 18년도부터 아르체토 시 인근 병원에서 소아과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매번 하는 말이 이쪽으로 와서 일하라는 얘기였다. 지겨울 정도로…….

부모님과의 사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흔하디 흔한 무뚝뚝한 장남의 역할. 꼬박꼬박 용돈과 생신을 챙기고, 가끔 본가로 내려가서 반찬을 받고, 영양가 없는 잔소리를 들으면서 네, 네,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였다. 가족 여행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가 마지막이다.

딱 중간에 걸친 가정이다. 버는 것도, 행복한 것도, 큰 굴곡이 없는 그런 집. 그래서 유산은 기대도 말라는 부모님의 말에 웃어넘길 수 있다.

 

2. “우 팀장님이요? 어우, 말도 마요. 엄청 예민하시죠……. 그래도 이러나 저러나 잘 챙겨주셨어요.”

(전) 24시 해담 동물병원 응급팀장.

이렇다 할 텃세에도 시달린 적 없는 오픈 멤버. 몇 년 동안 주간 근무를 줄곧 하다 21년 9월 즈음 야간으로 근무 시간대를 조정했다. 그 뒤로 붙은 별명은 “노오프NO OFF”. 스케쥴에 구멍나면 채워주는 사생활 없는 수의사……그 정도로 쉬지 않고 달렸다.

동료들과의 관계는 예민한 기질과는 다르게 썩 나쁘지 않다. 오히려 보호자들과 다툼이 잦았다. 그래도 아직까지 고소는 안 당했으니 다행이지 않냐며 모두가 농담처럼 웃고 넘긴다. 설렁설렁 일하기에는 동물을 아주 좋아한다. 정말로.

22년 1월, 일을 그만뒀다.

 

3. “전생에 산짐승이었나. 무슨 산을 이렇게 좋아해!”

취미는 등산과 캠핑, 그렇다보니 산 타는 게 특기다. 국내에 있는 산은 거의 다 정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년 전부터는 캠핑까지 하면서 쉬는 날마다 산에 콕 박혀사는 세미 자연인의 삶을 즐겼다. 인증 사진 찍는 데에는 큰 흥미가 없다.

가장 좋아하는 산은 오대산.

2022년~현재까지의 이야기

1. 22년, 세계 여행 그리고 불행한 입국

병원을 그만두고 세계 여행을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누나에게 초대를 받고 가페브로 입국한다. 바야흐로 5월 5일의 일이었다. 삼일 뒤, 전염병이 발병했다. 지지리도 운이 없었다.

자칭 하우스키퍼로 누나 집에서 신세를 지기 시작했다. 그야 관광객 신분으로 가페브에서 일을 구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시국일수록 누나를 돕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요리 실력이 늘어난 건 아마 이때쯤의 일이다.

슈퍼노바 바이러스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아파트 내부에서는 “생존자 커뮤니티”가 만들어졌다. 우남매는 커뮤니티에서 의료 지원을 담당했고, 의약품을 모아서 관리하는 둥 본격적인 토대가 잡혔다. 물론, 그의 입장에서는 불편하긴 매한가지였지만, 그나마 누나 아래에서 CPR이나 각 상황에 따른 응급처치술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2. 23년, 멸절 정책

멸절 정책이 발표되고 공든 탑이 순식간에 무너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동체보다 자신을 챙기기 급급해진 커뮤니티는 부족해진 자원에 불신이 커지면서 각자도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끝까지 어린 환자를 책임지려고 했던 누나는 병원으로 간 뒤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2주는 기다렸다. 원래 2주에 한 번 꼴로 오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이후로도 돌아오지 않으니 수소문을 했고, 어떤 소식도 들을 수가 없었다. 온갖 잡념이 정신을 좀먹었다. 죽었으면 어떡하지? 감염됐으면? 하지만 돌아오지 않았다는 건……. 아니, 여기로 오지 않을 수도 있지. 몇 주는 폐인처럼 지냈다. 하루치 식량으로 삼사일을 버티고, 울다 지쳐 잠들고, 숨만 쉬며 하루를 보내고——.

그러다 집 문을 따고 들어온 무뢰배 일당에게 보급품을 모조리 빼앗겼다. 그저 제정신을 차렸을 때는 더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남색 백팩만큼은 넘기지 않으려 얻어맞으면서 버티고, 버티고, 또 버텼다. 그 탓에 며칠은 앓아눕는 개고생을 걸쳤고. 그 뒤로 평생치의 노력을 다해 살아남기 위해 움직였다.

밤이면 나가서 이잡듯이 주변을 뒤적거렸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고, 시체 속에서 통조림을 발견해 고이 모셔두고, 다친 사람에게 치료해주는 조건으로 보급품을 일부 받기도 하며……끔찍하고도 불안정한 삶은 유지되었다.

 

3. 그리고, 현재.

라디오를 듣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여행 가방으로 들고 왔던 남색 백팩은 이제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게 되었다. 품에 끌어안고,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를 이를 악문다. 살아서 돌아가고 말겠다. 누나도 꼭, 찾아내서.

소지품

손전등

기호품

아몬드

능력치

근력 5 ∙ 민첩 4 ∙ 행운 1

특성

세기말의 의료법 위반 - 약품 소모 없이 10만큼의 체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오너 트리거 소재

동물학대 및 노골적인 동물 상해 묘사

텍관

제이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재희는 위협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제이를 고용한 것도 이 까닭이었다. 바깥을 돌아다녀본 적은 있지만,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한 이 험난한 도로 위에서는 마땅한 '보호'가 필요했다. 선금은 몇 푼도 안 되는 돈, 그러나 의뢰 지점까지 도착한다면 다른 보급품을 얹어 주겠다며 조건을 내세웠고, 수락됐다.

하지만 뜻밖의 재회가 '제이'를 등처먹는 기회가 됐다. 아파트에서 만났던 그 무뢰배 일당들을 조우한 것이다. "뭐냐, 일행이 있었으면 진작 말을 하지." 일행? 천만에 말씀. 남색 백팩을 끌어안고 바로 도망친 것은 그 말이 끝난 직후였다. 뒤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지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호위가 의뢰였으니.
이런 일을 해결하는 건 당신 몫이다!

이런 뻔뻔한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임태찬

지인들에게는 무슨 산을 그렇게 좋아하냐고 타박 받았지만, 비슷한 사람들은 으레 존재하는 법이다. 우재희가 등산 동호회에 가입하겠다 선택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때로는 호불호가 잘 통하는 사람이 필요한 법이니.

임태찬은 그 고집으로 가입한 등산 동호회에서 만났다. 워낙 사람이 좋았던 지라 동호회 사람과의 교류보다 '등산'에만 초점을 맞췄던 그도 조금씩 편하게 대할 수 있게 됐다. 누나와 함께 저녁 초대를 받기도 하고, 캠핑도 같이 즐기는 등 취미 생활이 잘 맞는 ‘친구‘ (같은?) 사이. 그의 딸인 임윤지와도 안면이 있을 뿐더러 공부를 도와주기도 했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다. 그것도 같이 있어야 할 사람을 잃어버린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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